<그래도, 낭만 >을 기획하며…….
기획 글. 예술감독 강효연
대구현대미술제의 정신과 2024년도 전시의 방향
1974년 최초로 대구현대미술제가 개최하고 50년의 세월이 흘렀다. 당시 작가들의 자발적인 연대로 만들어진 대구현대미술제는 작가들 간의 공감과 집단적 동기가 발현된 결과물로 새로운 예술의 가능성을 실현하고자 한 예술 활동이었다. 특히 작가들은 새로운 예술을 갈구하듯,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작품들을 발표하며 시대의 정신을 이끌었다. 이러한 집단적 움직임은 하나의 일관된 양식을 일궈내는 것이 아닌 개인의 개성을 드러내며 1970년대에 일어난 또 다른 흐름이었다. 해방과 전쟁 이후, 1960년 4.19가 독재에 저항한 목소리가 있었다면 표현의 자유가 억압되었던 1970년대는 표현의 갈망이 컸던 시기로, 작가들은 형식을 타파하는 설치와 오브제, 행위 등의 실험이 강조된 전위미술을 선보였다. 1974년 70여 명이 참여한 제1회 대구현대미술제가 계명대학교 미술관에서 열릴 때, 그들은 ‘폐쇄적인 데서 개방적인’ 것으로, ‘침체보다 흐름’의 방향을 설정하였고, 1977년 3회 때부터는 부대행사로 낙동강 강정 백사장에서 ‘이벤트’란 이름으로 행위예술이 펼쳐졌다. 1978년경에는 지방마다 현대미술제가 열리고, 비슷한 형태와 내용 그리고 비슷한 작가들이 참여하는 전시란 지적과 비판이 이어지면서 1979년 제5회 현대미술제에는 일본의 젊은 작가 15명과 한국작가 50명이 참가하는 전시를 마지막으로 막을 내렸다. 이때를 계기로 1980년대에는 일본과의 교류 전시가 종종 열렸다고 한다.
그로부터 50년이 흐른 지금, 대구현대미술제는 지역 주민들의 일상과 예술이 만나고, 다양한 예술의 변화와 흐름을 접할 수 있는 축제의 장이 되었다. 과거의 정신을 이어받아 세대를 잇고, 현재를 이야기하며 미래를 지향하는 모두에게 다양한 형태의 미술이 어떻게 우리의 일상과 마음에 스며드는지 말하는 자리로 말이다. 미술관이나 갤러리가 충분치 못했던 70년대와 달리, 여전히 이념적 혹은 정치적 각을 세우는 예도 있지만, 지금의 현대미술은 실험이란 말이 새롭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다양한 미술이 만들어지고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할 때 2024 대구현대미술제가 나아갈 방향은 무엇일까? 그건, 그 시대의 현상과 비판 그리고 바람이 담긴 내용을 전시로 노출하는 것이 아닐까! 세계의 손꼽히는 미술제나 비엔날레 등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전쟁과 이념의 상처로 얼룩진 과거의 이기심과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예술을 통해 세상을 향한 굵직한 목소리이길 바라면서 말이다. 이런 의미에서 대구현대미술제의 정신을 계승하고 세대를 아우르며 예술의 다양성이 공존하고 공유되어야 한다는 취지 아래, 명확한 전시의 주제가 도출되고 공감의 장이 형성되길 바란다. 이번 전시에는 제1회 대구현대미술제를 이끌었던 김영진 작가와 70년대 미국으로 이주해 본격적으로 실험 미술을 실천한 곽훈 작가를 포함해 총 40명의 작가가 참여한다. 본 전시 출품작가 29명, 달천예술창작공간 4기 입주작가 6명 그리고 달성문화도시센터에서 진행한 청년작가 전시 공모전 선정작가 5명의 작품으로 강정보 디아크 실내외 공간에 설치될 것이다.
전시주제
이번 전시주제로 ‘생과 사’를 바라보는 인간의 시선에 관해 논해보고자 했다. 참으로 무거운 주제지만 누구에게나 해당하고, 이를 통해 겸허해질 기회가 아닐까 싶다. “머멘토 모리(Memento Mori)”는 라틴어로 ‘인간은 언젠가 죽는다. 그러므로 오늘을 기억하라’란 뜻을 가진다. 전 세계를 뒤엎은 코로나란 전염병은 인간의 이기심을 확인하게 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다시는 전쟁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고, 인간 존중의 의미는 국적을 초월해 남녀노소, 인종 차별 없이 보편적인 인류애로 비쳤건만…. ‘평화’, ‘평등’, ‘배려’는 아이들을 교육하기 위한 교과서적인 문구일 뿐, 공존하기 힘든 것처럼 보인다. 인간의 인생은 뫼비우스의 띠를 걷듯 터무니없는 욕심과 실수로 반복되는 듯하다. 인간의 생은 영원하지 않기에 절대성을 갈구하고 삶 속에 끌어들인다. 이번 전시는 인간사 너머에 영원함이 있을 거라고 믿는 종교적인 관점에서뿐만 아니라 생성과 소멸의 이치를 알고 있으면서도 불멸과 영원을 갈망하는 욕망과 바람의 형태들을 드러내고자 한다. 시간을 거스를 수 없기에 순간의 아름다움을 현재에 가두고 박제하려는 인간의 도전은 예나 지금이나 예술작품으로 끊임없이 만들어졌다. 이에 전시의 키워드가 될 ‘낭만’은 불멸과 영원이란 불가능한 지점을 설정하고 어떤 역경에도 불구하고 살고자 하는 인간의 의지와 태도의 표현이다. 현실에 얽매이지 않고, 꿈을 실현하고자 하는 이들의 이야기로 펼쳐보고자 한다. 네덜란드의 화학자 파울 크뤼첸이 2000년 처음 제안한 인류세(人類世)는 새로운 지질시대 개념으로 오늘날의 환경 문제로 부각되어 종말의 가설을 가속하고 있다. 척박한 시대는 물론이거니와, 개인의 내면을 존중하는 시대에도, 혹은 좌절과 불안함 속에서도 낭만을 실천하는 예술가들의 도전은 이루어졌다. 이번 전시를 통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꿈의 세계를 공유하고자 한다. 1974년 대구 현대미술제가 탄생할 수 있었던 배경도 이러한 예술가들의 태도와 실천이 이루어낸 낭만의 결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