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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2019 미술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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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평론

2019 강정 대구현대미술제

경계와 비경계 사이

2019 달성 대구현대미술제
큐레이터 이 태 호

1_ 강정(江亭)

‘2019 달성 대구현대미술제’가 열리는 강정보 디아크 광장은 지리적 환경에서 살펴보면 두 강 (낙동강과 금호강)이 마주치는 접점에 위치하며 섬이 아닌 섬 같은 지형으로 힘차게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물고기의 형상을 지닌 뭍이다. 뭍의 꼭대기에는 세계적인 건축가 하니 라시드(Hani Rashid) 가 디자인한 기하학적 건축물인 디아크(The ARC)가 그 위용과 세련됨을 뽐내며 자리하고 있다.

강정의 역사적, 인문학적 의미를 소환하자면 과거 1974~79년까지 ‘대구현대미술제’라는 타이틀 을 내걸고서 학연과 지연, 특정 이념과 논리, 파벌에서 탈피한 젊은 예술인들이 모인 당시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작품들의 자생적 놀이마당이었고 또한 시대적 대안 미술로서 보수적 미술의 틀을 깨는 역할을 했으며 대구라는 지역적 현대 미술의 위상을 한층 높이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계명대학교 캠퍼스에서 시작된 전시는 5년간 지속되면서 전시와 병행하여 세미나를 개최하였으며 집체적인 이벤트를 연출하기도 하였다. 특히 1976년에 있었던 강정 강변 모래사장에서의 200명 가까운 젊은 예술가들이 설치와 퍼포먼스를 통해 현대예술을 논하면서 ‘강정’이라는 네이밍(naming)이 한국미술사 속에 크게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이후 단절되었던 미술제가 2012년 달성군 개청 100년을 기념하기 위한 일환으로 달성역사와 문화예술의 뿌리 찾기를 통해 ‘강정대구현대미술제’로 부활하게 되었으며 강정의 미술사적 의의를 계승함은 물론 동시대 미술의 이야기를 풀어놓으려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올해 미술제의 타이틀이 ‘2019 달성 대구현대미술제’로 바뀌게 되었다. 그 계기는 달성군의 전략적 방침으로 앞으로는 강정에서만 미술제를 개최하는 것이 아니라 달성군 지역 곳곳을 이동하며 미술제가 개최될 계획이기에 그 시발점으로 명칭을 변경하게 되었다. 그 논의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해 8월 27일 대구예술발전소 3층 수창홀에서 [달성 대구현대미술제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이라는 주제로 세미나가 진행되었다. 세미나 주제에서 이미 암시하고 있듯이 미술제가 시작된 발현점과 지나온 과정 그리고 미술제의 장소 이동에 따른 명칭 변경과 발전 방향성에 대한 요점을 발제하였으며 특히 야외 미술제로서의 의의와 장소 이동에 따른 장·단점을 집중논의 하고자 했다. 지금 강정은 과거에서 미래 로 끊임없는 변화를 준비하고 있다.

달성문화재단

2_ 경계와 비경계 사이

전시 주제는 다소 모호하면서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현대미술의 담론과 상통한다. 경계라는 것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다시 생기는 것이다. 물(水)과 뭍(陸地)은 그 경계가 모호하다. 분명한 것 같지만 수량에 따라 어느 순간 물이 뭍이 되고 다시 뭍이 물이 되는 반복을 거듭한다. ‘산과 섬’의 이 치 또한 다르지 않다. 섬이란 물로 둘러싸인 산의 꼭대기 즉, 섬이란 물을 빼고 나면 산의 꼭대기가 되는 것이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안과 밖이 수시로 바뀌는 반복을 거듭한다. 이것은 불분명하지만 단절된 공간이 아니라 공존 가능한 가능성의 영역이다. 여기서 우리는 명징함과 흐릿함에 대해 고찰해 볼 수 있다. 밤(어둠)과 새벽(미명未明)이 정확히 나누어져 있지 않거나 낮(밝음)과 저녁의 어스름이 이어진 다는 것. 그 사이에는 경계 지워진 듯 하지만 허물어진 비경계의 미묘한 자유로움이 존재한다. 경계와 비경계 그 사이는 신과 인간의 사이이다. 그 사이에 예술가가 있다.

고대로부터 예술가가 신과 인간을 연결해 주는 매개자 즉 영매(靈媒) 역할을 해왔듯이 지금의 현대미술 은 예술가를 통해 현실과 비현실 사이에서 대중 속으로 들어가 그 층위를 넓혀 나가고 있다. 예술가는 현실 속에서 비현실적인 세계를 제시하며 비현실을 통해 현대미술의 미학적 이해성을 구해 나가는 것이다.

동양철학에서는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대의 수(數)는 아홉 9이다. 0은 신의 영역이라 간주하여 감히 넘어서고자 하지 않았다. 중국의 자금성이 9999칸인 이유에서도 알 수 있다. 10000칸은 옥황 상제가 사는 자미궁이라 칭하며 신보다 1칸 적게 지었기 때문이다. 물의 끓는점을 비등점(沸騰點)이라 한다. 99°에서는 끓는다고 하지 않는다. 1°를 더해 100°가 되어서야 비로소 끓어서 수증기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처럼 99의 사회적 현상에 예술가가 창조한 예술품 1을 더해 신의 영역으로 초대하는 것이 현대미술제다.

3_ 공존(共存)

자연과 예술, 인간과 예술, 삶과 밀착된 예술, 공존은 21c의 화두이다. 우리의 현실은 인류의 존립 자체를 위협하고 있는 지구의 여러 가지 요소들 즉 산업화에 따른 불편한 진실들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그것은 개발과 보존 사이의 딜레마 (Dilemma) 같은 것이다.

2019 달성 대구현대미술제에는 국내·외 총 25점의 작품이 디아크 건물을 중심으로 공간특성에 대한 이해와 자연에 동화되는 균형의 정교화를 염두에 두고 최적의 위치 배정을 이루어 내었다. 현대미술의 개념들을 보다 쉽게 관객들에게 이해시키기 위한 예술적 소통에 무게 중심을 뒀다. 강정은 더이상 70년대 현대미술가들의 실험적 무대가 아니라 시민들이 함께 공유하는 공공의 장소로 변모 하였으며 현대미술제라는 거대 담론으로만 접근하기보다는 광장을 찾는 시민들과 소통하고 공유 할 수 있는 미술축제의 장으로서 거듭나고 있다. 작품들은 하늘과 땅 사이의 일상의 풍경 속에 들어온 예술로서 열린 공간에서 대중과 소통하기, 생활과 예술과의 상관관계 맺기를 통해 일상을 예술로, 예술을 일상으로 치환, 변환시켜 내기를 시도하였다. 시공의 경계를 넘어서 우주를 펼쳐 놓았으며 이 러한 낮선 풍경 속에서 관객은 현실과 예술의 경계에 서게 된다. 여기서 작가는 예술과 삶의 경계를 허물며 자신의 주체적 감각 활동을 통해 신의 영역으로 인도하는 역할을 다하게 된다.

미술제가 2012년 1회에는 작가가 현장답사를 하고 환경에 맞추어 작품을 제작했다면 해가 거듭 될수록 야외전시의 특성에 맞추어 안전성과 대중 소통을 염두에 둔 작품을 선택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 대해 일부에서는 강정의 역사적 특성과 현대미술의 본질을 흐리고 있다는 비판을 가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예술은 항상 진지해야 하는가? 아니면 유희적이어야 하는가? 하는 딜레마에 대한 논쟁이 일어난다.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Platon)은 예술을 잉여물이라 했다. ‘예술이란 삶을 모방한다고 애 쓰지만 결국 실패할 뿐이다.’라고 믿었고 ‘예술가들은 이상사회에서는 잉여 인간’이라 했다. 그러나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 1854~1900)는 ‘예술이 생활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이 예술을 모방한다.’라고 주장하며 플라톤의 논리를 정면 반박하였다. 현대에 와서 앤디 워홀(1928~1987)은 ‘플라톤 당신은 생활이 우선이고 예술은 잉여물이다. 오스카 와일드 당신은 모든 생활은 예술을 닮고 싶어한다. 그래서 예술이 더 지상에 있다고 했는데, 아니다. 이 캠펠 수프가 내 식탁에 있으면 생활이고 액자 속에 있으면 예술이다.’라는 발언을 통해 예술과 일상의 경계를 허물고, 그 무엇도 예술이 될 수 있는 새로운 시도를 보여주었다. 그 시대 예술가들은 예술을 고상한 것이라고 여기며 예술의 개념을 한정 지으려 하였지만, 워홀은 모든 것을 예술이라고 보았다. 그의 작품의 독창성은 예술을 따로 명명 하지 않은 것에 있다고 여겨진다. 이러한 공공미술에 반하여 순수예술을 지향하는 작가들은 작품을 만들 때 소통의 여부에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한다. 그들에게 중요한 가치는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예술혼 그 자체를 표현하기 위한 것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이상과 현실이 다를 수도 있고 같을 수도 있는 것은 자신의 선택 몫이다. 다양함을 수용하고 단절의 문화를 포용하는 것이 현대미술의 알고리즘 algorithm 이다.

당시 대구현대미술제가 현장미술, 이른바 바깥 미술의 성격이 강하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그것은 미술이 자연으로, 삶의 공간으로, 실세계로 들어가 대중과 소통하겠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 2013강정현대미술제 ‘강정간다’ 서문 中 발췌_박영택

위와 같이 야외미술은 대중과 공감하고 소통해야 하는 일차적 역할을 저버릴 수가 없다. 개인의 관념적 요소들로만 이루어진다면 작품은 결국 개인의 유희로만 남게 된다. 예술가는 예술을 통해 자신의 삶을 더 의미 있고 소중하게 만들어나가며 자아존중과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좁혀 나가는 과정을 반복하고 있다. 톨스토이의 작가론처럼 한발은 대중 속에 딛고 다른 한발은 앞서서 내디디며 시민의 눈높이를 맞추는 동시에 미술의 진보적 사회 역할을 다하는 작품들이 지금 달성 대구현대미술제의 작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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