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미술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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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미술제

2021 달성 대구현대미술제

예술을 담다, 달성을 품다

교차하는 시간들, 그 공존의 미학

2021 달성 대구현대미술제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달성 대구현대미술제가 올해로 10주년을 맞았다. 다채롭고 역동적인 한국 현대미술사의 한순간을 만들어 온 미술제의 10회차는 그 의미가 남다르다. 10년의 역사, 10회의 전시, 10번의 실험 열 번째 미술제는 과거와 현재를 포함할 뿐만 아니라 미래까지도 함축하는 10주년이란 명칭의 어감만큼이나 묵직하고 진중하게 미술제의 정체성과 관련된 화두를 던진다. 10주년을 맞은 미술제의 지나간, 현재의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시간은 과연 대구 달성군 강정이라는 공간이 갖는 장소성 및 지역성과 어떻게 맞물리고 확장되며 지속될 수 있는가?

 

. 그때, 모든 시작은 현대미술이었다

미술제가 열리는 장소인 강정보 일원은 한국 전위미술의 역사에서 독보적 위상을 갖는다. 1970년대 중반 일단의 젊은 작가들이 권위적이고 경직된 미술계와 사회문화에 반발하며 의기투합하여 대구 도심에서 전시를 열고 강정보 일원에서 설치미술과 퍼포먼스를 펼쳤다. 한국과 전 세계적으로 냉전과 대항문화의 기류가 소용돌이치던 1970년대에는 미술계 역시 격동의 시기를 지나고 있었다. 전후 앵포르멜 경향에 이어 모노크롬 추상으로 모더니즘이 본격적으로 만개한 한국 현대미술은 다른 한편으로 다양한 매체적 실험을 시도하며 미술 개념을 확대해나갔다. 대구와 강정에서 전통적인 미술의 조형어법을 깨뜨리는 파격과 실험적 미술 형식을 선보였던 젊은 미술가들의 도전은 1970년대 한국 미술사의 역동적인 한 단면으로서 시대의 징후답게 수명이 길지 않아 1979년 전시를 마지막으로 그 맥이 끊어진다.

2000년대 들어 또 다른 시작의 역사가 열린다. 대구현대미술제의 의의를 기리고 그 실험정신을 계승하며 지역의 현대미술 정체성을 구현하고 동시대 세계 미술 현장과 연접하는 문화예술 브랜드의 창출을 위해 달성문화재단의 주관하에 강정 대구현대미술제의 막이 오른 것이다. 이후 강정에서는 매년 여름 성대한 예술축제가 개최되었고, 지난 2019년 현장성을 고려한 달성 대구현대미술제로 명칭이 바뀌며 새로운 발걸음을 떼기 시작한 미술제는 이전에 계승한 미술사적 정체성의 근간 위에서 새로운 지향점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이번 미술제는 아방가르드 미술사의 후계를 자처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난해하다는 현대미술의 심리적 장벽을 무너뜨리고 누구에게나 가까이 다가가는 미술을 표방했다. 미술관이나 특별 전시관과 같은 별도의 분리된 공간에서 전시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디아크 광장이라는, 평소에도 시민들이 즐겨 찾으며 여가를 보내는 바로 그 공간에 미술작품이 설치되었다. 그럼으로써 전시장은 일상 속으로 미술이 들어온, 즉 삶과 완벽하게 융화된 예술의 생생한 현장으로 변모했다.

 

. 지금, 미술로 연대하다

지난해 초부터 전 세계적 비상사태를 불러온 신종 바이러스와 뒤이어 출현한 여러 변이 바이러스는 2년이 다 되어가는 현재까지도 기세가 꺾일 줄 모르고 여전히 삶 곳곳에서 우리의 일상을 지배한다. 예컨대 마치 신체의 일부인 듯 거의 항시 우리의 얼굴을 덮는 마스크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우리에게 강제로 이식한 제2의 피부로서, 인간의 감각과 능력이 확장된 게 미디어라는 마셜 매클루언의 말을 빌리자면 그야말로 새로운 미디어가 되었다. 기존의 관습과 질서가 흔들리고 변화하는 혼란과 위기의 시대일수록 연대와 공감의 필요성이 커진다. 난해하지 않고 직관적으로 파악 가능한 작품의 비중이 높아진 이번 미술제에서 참여 작가 다수가 코로나19 시대에 우리가 당면한 현실적 고민을 모티프로 한 작품을 선보이며 관객과의 소통을 시도하고 연대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경제적으로나 심리적으로 곤경에 처한 이들을 위한 응원과 위로의 메시지가 곳곳에서 눈에 뛴다. 모임과 집합을 금기시하는 코로나19 방역 상황에서 특히 문화예술계는 작년부터 큰 어려움을 겪어왔다. 예술적 상상력으로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넘나들며 희망을 이야기하는 작품들에서 관객뿐 아니라 스스로를 향해 힘내라고 응원하는 작가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특히 관객 참여는 이번 미술제의 주요 화두 중 하나였다. 관객이 작품 안으로 들어가거나 작품에 앉거나 작품과 접촉하는 등 비교적 간단하게 설정된 작품부터 관객을 식사에 초대하고 그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 비로소 완성되는, 니콜라 부리요가 주창한 관계 미학을 구현하는 작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정도와 깊이로 관객 참여를 전제하는 작품들은 타인과 신체적 접촉을 꺼림칙해 하는 것이 어느새 미덕이 되어버린 오늘날의 사회에 대한 예술적 저항과 강력한 도발의 제스처로 읽을 수 있다.

실험적 조형언어와 미학적 담론으로 동시대의 사회현상을 통찰하여 인상 깊게 재현하거나 섬세하게 변주한 작품들은 현대미술제라는 전시 본연의 성격을 잘 드러냈다. 거대한 재활용 쓰레기 기둥과 반짝이는 대형 다이아몬드의 조합에서 나오는 역설적 조화라든지, 보이지 않게 우리 삶 깊숙이 침투한 상업적 환경을 미디어와 설치로 구현한다든지, 경계와 경계 짓기의 의의에 관해 담담하게 성찰한다든지, 평소 간과하기 쉬운 디아크 광장 잔디의 존재를 부각시키며 전시가 열리는 장소의 공간성을 되돌아보게 하는 등 폭넓은 스펙트럼의 전시작들에서 동시대 미술의 실험성과 다원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 내일, 미술과 로컬리티가 교차하다

지역의 대표적인, 더 나아가 한국과 국제 현대미술이 펼쳐지는 장으로서 달성 대구현대미술제의 미술적 지역성은 장소와 결부된 지역성, 지역의 미술을 위한 공간으로서의 지역성, 그리고 수용자인 시민에 초점을 맞춘 지역성이라는 관점에서 고찰될 수 있다. 장소의 측면에서 지난 10년간 미술제는 디아크라는 세계적인 건축물과 인근의 녹색 공원으로 이루어진 강정보 인근의 물리적 장소를 기반으로 지정학적·미술사적 정체성을 구축해왔다.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강정의 역사적 아우라는 미술제에 독특한 색채를 부여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지리적·공간적 한계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를 넘어서고자 한다면 공간에 관한 사유와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할 것이다. 앙리 르페브르의 공간 생산 이론처럼 물리적 장소에서 사회적·심리적 공간으로의 전환에 방점을 두게 되면 장소는 그 자체의 특성보다는 그것을 채우는 의미를 통해 성립하게 된다. 강정 혹은 달성군이라는 장소 그 자체보다 미술제가 개최되는 현장의 시민들, 미술제를 방문하는 시민들이 공간을 채움으로써 비로소 완성되는 장소의 의미가 더욱 중요해지는 것이다.

 

미술은 삶과 괴리될 수 없다. 지역과 견고하게 결속된 예술행사로서 지역민과 함께 호흡하기를 천명한 미술제라면 더욱 그러하다. 평범한 일상과 소통하는 현대미술, 그 비범한 가능성을 확인하는 현장으로서 2021 달성 현대미술제는 10주년을 맞아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들이 교차하며 소통을 위한 공간을 여는 미술의 잠재력과 확장 가능성을 제시했다. 이제는 또 다른 10년을 그려보며 미술제의 새로운 정체성과 비전을 설정할 때이다.

 

큐레이터 신원정

도태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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