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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지난 미술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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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년 미술제

2014 강정 대구현대미술제

강정에서 물·빛

강정은 1970년대 전국에서 모인 작가들이 낙동강 백사장에서 이벤트(Event)를 벌였던 곳이다. 정치 문화적 격동기에 일군(一郡)의 작가들이 강정에서 자연을 벗 삼아 집단적인 미술운동을 벌였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전시가 통제되는 억압적인 분위기에 대한 해방감을 얻기 위한 것이었을까? 아니면 창작 욕구를 발산하기 위한 그들만의 저항방식이었을까? 당시의 미술가들이 강정으로 간 까닭이 무엇이었건 간에 일상까지 통제되던 시대에 미술가들의 자유로운 발상과 표현행위는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당시 가난을 벗어나고자 새마을운동과 경제개발에 매진하던 분위기 속에서 한국미술이라고 말할 수 있는 특징은 무엇이었을까? "1970년대의 특징은 관념화와 획일화 현상 그리고 화단세력에 따른 이합집산, 초반의 물질적 사고와 후반의 과도한 관념론"1)을 들고 있다. 또한 당시 한국적인 정체성을 고민하는 작가들의 움직임이 힘을 얻는 시기이기도 했다. 이러한 시기에 서구미술이 한국적 수용과정에서 굴절되었던 것에 대한 반성적 결과로 물질적 모노크롬(Monochrome)을 비물질화 하는 것도 70년대의 현상이었다.

"1970년대 우리의 모더니즘 미술 또한 사실상 어느 정도 과거의 유산을 되풀이 하는 서구미술의 일본을 통한 재수입, 그 과정의 반복이 서구철학과 일본사상과의 결합에 한국적 정체성이라는 제3의옷을 입힌 산물일 수도 있겠는데, 이를 서구철학에 대한 대안으로서의 동양사상에 근거한 우리만의 독특한 것인 양 아예 타자의 흔적을 지워 버리고 단일 주체의 확립만을 주장할 수는 없는 여러 어려운 상황 속에 놓여있음"2)을 피력한다.

이렇듯, 70년대 초반과 중반의 한국미술은 소그룹 활동과 모노크롬이 주도한 시기였다. 이러한 시기에 <대구현대미술제>74년과 75년에 실내 공간에서 전시를 하다가 77년에는 도시를 벗어나 강물이 흐르고 뜨거운 햇살이 비치는 오월의 첫째 날에 낙동강 강정 백사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78년에는 그 여름의 끝자락을 달성 냉천천변 돌밭에서 행위미술이나 설치를 통한 이벤트를 했고, 79년에는 한국과 일본작가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낙동강 백사장에서 7월 한여름을 이벤트로 달구었다.

당시 <대구현대미술제>를 주도했던 작가 몇 분의 기억을 되새겨 왜 강정에서 이벤트를 시작했는지 간헐적이나마 갈증을 해소하고 나서 지금의 강정과의 연결고리를 찾아보는 것이 '강정대구현대미술제의 귀환'에 당위성을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70년대 중반에 미대를 갓 나온 작가들이 대구에 모여들면서 '새로운 것 좀 만들어보자'고 해서 미술의 고정관념을 깨기 시작했다.”(최병소),“ 70년대의 실험성은 국전에 대한 반()국전처럼, 시대적 변화에 따른 젊은 작가들의 태도, 당시 화단에 대한 반발이자 시대적 변화에 따른 충돌 같은 것이었다.”(이명미), “대구현대미술제 이후 전국적으로 현대미술제가 이루어졌다. 그것은 한국현대미술이 일반인들의 이해뿐아니라, 한국현대미술의 교육현장을 현대화 하는데도 상당한 역할을 했다. 동아시아 각국을 비교해 볼 때, 일본이 서구미술의 영향을 받고 먼저 수용했더라도 한국은 근대미술의 흐름에서 급격하게 현대미술로 변할 수 있는 바탕이 되었다.”(이강소)“ 대구현대미술제는 강정에서 자연을 배경으로 개방적인 방식으로 예술행위를 보여 주려했고, 그것을 통해서 예술의 폭을 넓히려 했던 시도였다.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이벤트는 열려져 있는 자연과 작가의 사고 그리고 적절한 형식이 구조적으로 만나서 현장에 있는 사람들과 공감하는 것이다.”(이건용) “70년대는 일종의 교과서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교과서는 몇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한 발판이다. 그것은 따르고 쫓는 목표지점이 아니라, 새롭게 나아가기 위해 버려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그것을 버리기 위해서는 제대로 나를 알고 세계를 알면 그냥 버리는 것이 아니라 크게 버리는 것이고, 버릴 수 있어야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다.”(장석원)3)

40여년이 지난 지금은 도시의 확장으로 인해 산천이 변했지만, 강정에서 이루어 졌던 젊은 작가들의 예술정신을 이어가고자 <강정대구현대미술제>를 시작한지 올해로 세 번째가 되었다. 2012년 제1회의 주제가 "강정랩소디"였고, 이어 2013년에는 "강정간다"를 주제로 진행되었다. 그리고 2014년은 "강정에서 물·"이라는 주제로 823일부터 921까지 30일 동안 전시가 이루어졌다. 전시의 주제에서도 알 수 있듯이 3회까지 진행되는 동안 강정이라는 '장소'를 강조하는 전시였다. 그렇다면, '장소'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사전적 의미로 '어떤 일이 이루어지거나 일어나는 곳'이 된다. 하이데거(Martin Heidegger)의 관점에서의 장소는 '모든 것을 모으면서 보내는 근원 내지는 원천'이라는 의미를 갖는다고 한다.

이처럼 '장소'는 어떤 구체적인 시간과 공간이 일치하는 지점에서 어떤 일이 이루어지는 곳으로, 오는 것과 가는 것의 교차점이자 정거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미술품이 놓이고 소통이 이루어지는 장소는 미술관이나 갤러리이다. 미술관이나 갤러리는 타블로에 그려진 그림이나 이동이 가능한 조각을 전시하는 곳이다. 그래서 실내 공간에서 전시되는 회화나 조각 작품은 장소적 맥락에서 자유롭거나 혹은 구애되지 않는 단일한 성격을 갖는다. 이 말은 현대미술이 건축에서 떨어져 나와 자립적 혹은 자족적 작품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그것은 작품이 놓이는 장소에서의 상황적 맥락 없이 그 자체로 자족적인 순수한 존재였다.

1960년대 이후는 '장소 특정적'(site specific) 설치미술이 미술관 밖으로 나와 삶과 분리된 공간이 아니라, 삶과 예술이 하나로 연결된 장소에서 재()맥락화 된다. 이는 대지예술(Earth art)이 등장하면서 '자족적 이었던 순수한 존재'가 다시 시간과 공간이 일치하는 교차점 속에서 특정한 장소와의 교감을 시도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래서 미술은 해변이나 산으로 나와 그만의 교감방식을 만들어 가는 미술, '장소특정성' 이라는 이름으로 '현장성', 즉 특정한 장소가 가진 환경을 재인식하고 자연물 그 자체인 돌, , 나무, 모래를 활용해 예술과 자연을 새로운 차원에서 재결합한다. 이렇게 예술은 주변 환경과의 종합을 시도했다.

이런 시대적 변화 속에서 70년대 한국의 작가들 역시 자연에 대한 새로운 자각이 이루어 지면서 변화된 인식을 실천하려는 움직임이 소그룹 형태로 생겨났다. 대구현대미술제도 그들만의 방식으로 결과만이 아닌, 과정이나 행위 혹은 태도가 중요시되는 현장미술을 시도했다.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강정대구현대미술제의 귀환'은 과거와 미래가 바로 현재라는 시간과 현장이라는 장소에서 유기적으로 살아 숨 쉬고 있는 '소통의 역사', '교감의 장소'라는 것을 전제하고 이루어져야 하는 기획이다.

김옥렬 / 미술평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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