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강정 강가에서 미술인들이 모여서 당시로서는 보기 드문 전 위적이랄까, 실험적인, 새로운 미술언어를 연출했다. 기존 미술권력이나 규범화된 미술언어에 대한 불만이나 도전인 까닭에서였다. 그래서 이들은 도시를 떠나, 기존의 한정된 전시공간을 벗어나 한적하고 여유로운, 변방에 가까운 강정 강가로 모여서 이벤트를 벌였다. 어찌 보면 ‘강정 간다’ 는 그 뉘앙스 자체는 젊은, 새로운 작가들이 기존 미술계에 신선하고 청량한 바람, 새로운 공기를 불어넣고자 하는 바람과 연결되어 있다고도 해석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권력화 된 장소, 공간을 벗어나 변방에, 빈틈에 사건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니 이 문구는 단지 특정 시인의 시 제목만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강정 간다>는 수사는 이전에 대구현대미술제가 보여준 몇 가지 의미 있는 지점과도 부합하는 수사에 해당한다.
1974년 대구에 거주하는 몇몇 작가들이 중심이 되어 <대구현대미술제>를 만들었다. 이후 이들은 1977년 당시 한국의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현대 미술가들을 총 집결해서 대구시 달성군 강정, 낙동강 유역에서 일련의 이벤트를 펼쳤다. 이 행사(이벤트)는 한국현대미술사에서 매우 의미 있는 이 역사적 사건이 되었다. 당시 그 행사에는 학연과 지연, 특정 이념과 논리, 파벌에서 탈피해 선정된 작가 200여명이 참석했다.
한국 최초의 집단적인 이벤트로 평가되는 그 행사는 당시의 주류미술언어나 중심사조에서 이탈해 새로운 미술에 대한 사고와 매체에 대한 신선한 감각, 그리고 실험의식과 전위적 정신에 충만한 작가들의 의욕적인 이벤트로 기억된다. 그로인해 한국 현대미술사의 역사가 새롭게 기술되었고 더불어 대구라는 지역이 한국현대미술사의 공간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부여받게 되었다. 당시 이 전시는 ‘한국적 현대미술’에 대한 모색과 갈망에서 나온 자생적인 운동이자 기존 미술계의 관습적 구도에서 탈피해 진정한 예술적 자유를 추구함과 동시에 새로운 미술의 경향과 논리에 대한 탐색을 시도했던 역사적 행위였다고 보여진다. 그로인해 대구의 현대미술 나아가 한국현대미술은 풍요로움과 신선한 자극 속에서 새로운 차원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 대구 현대 미술제는 단명하고 역사적 자취로 사라져버렸다. 역사가 되어버린 그 행사의 의의를 새롭게 주목하고 그 정신을 계승하고자 하는 맥락에서 이 전시는 기획되었다. 당시 대구현대미술제의 의의는 다음과 같다.
첫째, 서구현대미술을 어떻게 수용하고 이를 내재화해서 한국적인 현대미술을 어떻게 만들어내느냐라는 과제, 당시의 그 질문과 모색은 여전히 한국 현대미술에서 핵심적인 과제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사실 한국의 현대미술이란 서구미술의 담론을 어떻게 토착화하거나 자신의 논리로 재설정하느냐의 문제였다고 본다. 현대미술이란 결국 담론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당시 작가들은 서구에서 밀려오는 다양한 현대미술, 전위미술을 수용하고 이해해야 하는 한편 그것을 어떻게 자기 언어로 만들어낼 것인가를 집단적으로 고민, 학습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을 서로 비춰보고자 했다, 그 결과가 대구현대미술제와 같은 집단적인 운동, 이벤트였다고 본다. 당시 이들이 처한 문제의식은 지금도 별반 다르지는 않다. 따라서 그 의미를 새삼 반추해보고 논의를 지속할 필요가 충분히있다.
둘째, 당시 대구현대미술제는 학연과 지연을 타파하는 한편 실험적이고 새로운 언어를 지닌 작가들에게 작품발표의 장을 마련해주었고 이를 통해 스스로 자신만의 형식언어를 만들도록 해주었다. 이는 작가들 스스로 전시의 장, 담론의 장, 학습의 장을 만들어나간 흥미로운 사례였다. 그러니 당시 작가들은 작품을 생산하는 작가임과 동시에 서구미술을 소개하는 이론가, 전시를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전시기획자의 역할을 동시에 짊어져나갔다. 이 복합적인 작가관은 사실 이전과는 다른 현대 미술가들의 존재 의미가 되었다. 그러한 달라진 작가상이 대구현대미술제로부터 비롯되었다고 본다.
<강정간다>의 전시의 주제(컨셉)는 이전의 대구현대미술제가 보여준 정신의 계승이란 측면이고 그것을 동시대작가들의 작들의 작업을 통해서 살펴보자는 것이다. 물론 이 의도는 사실 모호하다. 당시 대구 현대 미술제는 단일한 성격의 것이 아니며 짧은 시간동안 일어났다 사라진 것이기에 그렇다. 그래도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분명 의미있던 당시의 역사적 사건을 추억, 기억하고 그 정신이랄까 의미를 그 자리에서 되돌아보자는 것이 이번 전시의 의도다. 아울러 당시 대구 현대미술제가 현장미술, 이른바 바깥미술의 성격이 강하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그것은 미술이 자연으로, 삶의 공간으로, 실세계로 들어가고 대중과 소통하겠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었던 일이다. 또한 현장에서 가능한 미술, 미술관이란 제도에 들어가기 어려운 작업을 하겠다는 의도이고 이는 기존 미술계제도와 소통의 통로를 전환시켜보고자 하는 의미로도 읽히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 이번 전시, 행사는 철저히 강정 물문화원 주변의 공간, 바깥이고 야외이며 시민들의 산책로이자 바람을 쐬러 오는 공간에 직접 개입해서 연출되는 것을 목표로 하였고 그래서 그에 적합하다고 여겨지는 작가 일부를 선정했다. 주어진 공간이 너무 광활하고 한정된 예산안에서 작가를 선정해야 하는 어려움에 의해 26명의 작가를 선정했고 이들의 작업을 물문 화원 공간 주변 적절한 장소에 배치해서 관람객들이 한가히 거날다가 문득 작품을 발견하고 만나는 흥미로운 체험을 주고 싶었다. 그러니까 현장에 놓이고 연출하는데 상당히 효과적인 작업을 가능한 선정했다는 뜻이다. 그러니 물문화원 주변을 여러 작가들의 다양한, 다채로운 작업들이 놓이고 스며들면서 어떠한 환경적 변화를 일으키고 그곳에 오는 사람들에게 감각적인 관여를 가능하게 해주느냐를 한번 잘 살펴보자는 의미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만큼 효과적이었느냐는 생각해볼 문제다.
이번 <강정간다> 전시는 앞서 언급한 이전 1970년대 중후반의 대구 현대 미술제의 정신을 계승하는 한편 한국적인 현대미술의 언어를 지니고 있다고 여겨지는 작가들의 작업을 선별해 본 전시다. 작가선정은 특정 학연, 지연에서 벗어나 인선을 했다. 가능한 전국의 작가들을 망라했다. 당시 대구현대미술제를 이끌었던 주축작가 몇 명을 초대하는 한편 아울러 그들이 추구했던 정신에 부합되는 한편 이곳 강정보일대의 공간에 적합하게 개입되고 활용되어질 수 있다고 여겨 지는 작가/작업을 선별해 함께 전시를 하고자 했다. 이들 작가들 역시 1977년 당시 대구현대미술제가 추구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학연과 지연을 초월하고 다양한 매체와 실험적인 시도를 하고 있다고 인정받는 작가들로 선정했다.
향후 이 ‘강정 대구현대미술제’가 이 강정보 일대에서, 1970년대 이곳에서 있었던 사건의 진정한 의미를 끝없이 반추하고 상기하면서 그 진정성을 매년 새롭게 해석하며 거듭 환생하기를 기대해본다.
박영택 / 미술평론가